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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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오랜만에 전통적인 디자인을 다루는 책을 읽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최근 몇년 간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주제는 훨씬 디자인의 원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약간은 두서없고, 약간은 협소하고, 약간은 지루하다. 물론 내가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겠냐만은, 책 전체가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가끔씩 눈에 띄는 이야기, 눈에 띄는 사례들이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얻은 것이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스크랩 한 내용.

한편 사토 마사히코는 이 스탬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을 때는 환영이라는 느낌의 스탬프가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스탬프를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 보니 현재의 중립적인 상태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디자인에는 쓸모없이 남아도는 메시지가 너무 많으니까.” 현재의 스탬프도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있니 않은가? 괜히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므로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답을 찾았음에도 그것을 더욱 정밀하게 수정하는 신중함과 성의는 원리를 실용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세한 센스의 일부분이리라.
p. 50

 

이런 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위를 치밀하게 탐구하면서 그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후카사와의 방식이다. 이것은 ‘어포던스’라는 새로운 인지이론을 연상시키는 사고방식이다. 어포던스는 행위의 주체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을 성ㄹ립시키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나가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서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afford)’고 할 수 있다.
p. 63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단 취급하는 영역을 시각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촉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각 채널을 향하여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전시회 티켓. 인쇄된 사진이나 문자는 시각적인 것이지만 그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 종이는 추상적인 하얀색 평면이 아니다. 손끝에 섬유의 질감을 전해 주는 물질로서 미세하게나마 무게감도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손바닥에서 둥글게 말기도 하고 반으로 접기도 한다. 즉 그것은 촉각의 자극을 싣고 있다. 그리고 만약 거기 인쇄된 것이 깊은 숲의 사진이라면 그것은 시각에 그치지 않고 청각과 후각 등의 기억까지도 미묘하게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뇌리에는 몇 가지 자극의 축적에 의한 복합적인 이미지가 태어나게 된다. 말하자면 정보를 다루는 인간은 감각 기관의 다발이다. 이렇게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디자이너는 각종 정보를 조합한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p. 71

  • Published: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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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노트의 재활용

오랜만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칼과 자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

최근에 회사 일로 짧은 출장을 자주 다녀와서,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이미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사용중이었지만,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기존의 보조배터리는 예전에 샀던 소가죽을 덧대어 한땀한땀 바느질을 했었다. 질감이 참 좋았지만, 두께가 두꺼운 것이 흠이었다. 샤오미 배터리의 재질은 맥북과 아이폰을 닮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제품의 기능과 보관형태에는 맞지 않는다(좋은 점은 뭔가 덧대기 좋다는 것). 보조배터리는 가방에 보관하게 되고, 가방에는 스크래치가 날만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샤오미 보조배터리도 무언가 덧대기로 했다.

내 방에는 쓸데없이 모아둔 물건들이 참 많은데, 이번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소가죽은 두꺼웠고, 여러 두께와 재질의 종이는 내구성이 부족했다. 얇은 천은 질감과 마감이 아쉬울 것 같았고, 캔버스천으로 쓸만한 것은 색이 몇 개 없었다. 한 5분 정도 방을 뒤적거린 뒤, 다 쓴 몰스킨 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몰스킨 노트를 집었을 때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좋겠군.

뭐, 그렇다고 몰스킨 노트의 커버 재질이 아주 고급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느끼는 그 감촉을 계속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방에서 쉽게 바로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까.
스타트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는데, 사실 그 동안 노트에 필기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는 몰스킨 노트를 사용하여 필기하고 아이디어를 그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는 예전에 썼던 여러 몰스킨 노트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을 많이 타서, 세월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적당한 녀석을 하나 골라서, 슥삭슥삭 자르고 붙여서 완성을 했다.

그렇게 멋들어지지 않아도 나만을 위한 감촉을 지닌 물건이니까 마음에 든다.
기능적으로는, 가방 안에서 다른 물건들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특히 양쪽 끝 부분을 한번씩 접어서 약간의 내구성을 가지게 한 뒤, 배터리보다 1mm 정도 더 길게 재단을 해서 끝부분이 스크래치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차갑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

몰스킨 노트는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커버의 질감, 그리고 종이의 색감, 종이의 질감, 그리고 왠만한 노트보다는 나은 종이의 기능적 품질, 그리고 마지막을 완성하는 고무밴드가 마음에 드는 점인데, 보조배터리도 여러 측면에서 몰스킨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제나 13인치, 24인치 모니터를 바라보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고, 회의만 하며 만져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가끔씩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손에 잡히는 도구를 사용하고, 내 손의 정확성을 느껴보고 여러 질감의 물건을 다루게 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아니, 이건 공예에 가까운 것일까. 배운 뿌리를 못잊는 것일까. 실제로는 다른 것인데 나는 ‘디자이너’라는 틀을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뭐! 디자이너라는 틀에 끼워맞추지 않더라도, 이런 생활공예는 누구나 해볼만 하다. 우리 조상들은 다들 공예가 아니었나.

마지막으로, 양털 깎인 양처럼 되어버린 나의 몰스킨 노트. 그래도 의미있게 재활용 되어서 주인의 손을 더 오래 타게 되었으니까 좋게 생각합시다 :)

  • Published: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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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풍경을 자주 보았다.

스물 다섯 이후로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채웠다. 매일 나무들의 숲이나 강을 보면서 지냈고, 그 풍경 속을 거닐었다. 음악을 듣고, 담배를 태웠다.

이제는 고등학교때 느꼈던 감정과, 15년 전, 10년 전, 5,6년 전 느꼈던 감정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감정을 대하는 스펙트럼이 줄어든 것일까, 혹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늘어나서 예전의 감정들이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실, 풍경은 어릴 때 가장 많이 보았다. 풍경 속에 살았다. 저수지 둑에서 놀이를 하고, 아카시아나무 길에서 꽃을 따먹고, 딱딱한 나무껍질을 만지며 사슴벌레와 놀았다.

군대에서도, 숲 속에서 살았다. 봄에는 봄꽃을 보고, 여름엔 비오는 숲속을 거닐고, 가을엔 후임을 데리고 단풍길 산책을 다니고, 겨울엔 아침에 새하얀 눈밭을 밟았다.

강이 보이는 풍경. 가끔 함께 풍경을 보고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이 생각난다는 말은, 참 좋다.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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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mer로 만든 화이트노이즈 서비스

요즘에는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화이트노이즈, 자연의 소리들을 가끔 찾아 듣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일요일 하루 동안 잠시 근심을 잊고, 머리를 환기시키기 위해 디자인과 프로토타이핑 작업을 했습니다. 하고나니, 정말 요즘 새로운 UI 설계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 디자인 컨셉

멋진 컨셉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가든하다 서비스를 연결지어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무척 좋아하고 있거든요. 가든하다에서 마음에 들었던 테라리움 상품의 이미지를 각각의 화이트노이즈 아이템으로 설정하고, 음악은 유투브에서 Natural sound로 검색을 해서 찾았습니다(개인의 습작 용도이니 저작권에 문제는 없겠죠?ㅠ). 그런데 테라리움 모습과 사운드와의 매칭이 되지 않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제가 여행가서 직접 녹음을 해와야겠어요 :)


시작한 계기가 마음에 드는 UI를 만들어보자,였기 때문에 디자인은 안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최종 인터랙션과 디자인은 아래처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픽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약간은 허술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뭐, 전체적인 인터랙션의 컨셉이 중요하니까요!
사운드 테마에 대응하는 가든하다의 아이템을 동그란 이미지와 타이틀로 배치하고, 현재 재생되고 있는 아이템은 흰색 카드를 배치하여,
1. 어떤 아이템이 재생되고 있는지 강조한다
2. 해당 아이템에 대한 부가 정보 표시 (사운드 소스 링크, 테라리움 상세보기)
3. 나머지 아이템은 톤을 죽여서 정보의 밀도를 낮춘다


2. 이벤트에 대한 구조

사실 구조라고 할만한 것도 없지만, 대략 기능으로 나누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됩니다. ‘아이템 선택’ 액션에 대응하는 myFunction(소스에서는 Frame_move)이 대부분의 작업을 하는데요, 이것저것 일괄로 적용해야할 것들을 다 넣고, 사용자가 어떤 아이템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변수를 넣고, 그것에 맞게 열심히 움직이고 정보를 바꾸게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첫 번째 아이템을 선택하면 카드가 첫 번째 아이템 위치로 이동하고, 첫 번째 아이템의 타이틀의 opacity가 1로 되고, ‘See details’링크의 주소가 변경되고 하는 식이죠. 물론 두 번째 아이템을 선택하면, 그때 지정한 변수에 따라 위의 내용이 착착 바뀌게 되겠죠.

3. 프로토타입 코딩 작업

프로그래밍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이 필요할 때마다 이것저것 찾아서 익히다보니 코드는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여긴 언제나 대충 넘어감)

프로토타이핑과, 소스를 보시면 됩니다.
https://framer.cloud/wJwfs/

아, 이번에 제대로 처음 시도해본 것이 있는데, Framer에서 사운드파일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아주 상세한 기능이 제공되지는 않지만, 정말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운드 플레이
audio = new Audio
audio.volume = 1
audio.src = “사운드 파일 주소”
audio.play()
audio.loop = true

혹시 사운드 재생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보세요.
https://github.com/benjamindenboer/Framer-AudioPlayer
https://blog.framer.com/visualizing-sound-with-framer-b1d834131c22#.jti2z49kx
https://www.w3schools.com/tags/ref_av_dom.asp

그리고 사용자 함수를 설정하고, 한 이벤트에 여러 변수를 설정하는건 아래와 같이 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 함수 정의
Frame_move = (AA,BB,CC) ->
object.opacity = AA
object.x = BB
object.visible = CC

# 이벤트 설정, 함수 실행
object.onClick (event, layer) ->
myFunction(변수A,변수B,변수C…)

코딩부분을 열심히 설명드리지 못했지만… 저같은 초보분들은 서로 소스를 보며 익히는 것이라 생각하며.

4. 마치며

아직 모든 것이 완벽히 마무리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서, 관심이 유지된다면 계속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디테일을 손보며 완성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만들 생각이 있어서 빠르게 프로토타이핑을 해본 것이었는데, 오후 내내 만지작 거린 것을 보면 바로 웹으로 만들기를 시도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Framer는 모바일용 디자인을 하고 보기엔 딱 좋은데, 일반 웹에 대해 해보기에는 제한이 많네요. 특히 Sketch 파일을 임포트해서 쓰다보니, 크기를 고정해놓은 채로 작업을 하게 되고요.

다음에는 진짜 웹으로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기를!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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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a

Sofa.

인도에 오면 가끔 소파에 눕는다. 그럴 때마다 감탄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누워) 티비를 보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소파는 누워서 쉴 수 있는 기능을 위한 도구가 아닐까.

소파의 길이는 키보다 약간 짧다. 양 끝의 팔걸이는 머리를 기대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기댔다 쓸데없이 움직이기에 좋다. 안쪽으로 약간 비스듬한 바닥쿠션은 몸이 안쪽으로 슬쩍 쏠리게 해준다. 슬쩍 쏠린 몸은 등받이 부분에 딱 들어맞는다. 팔을 기대거나, 다리를 기대거나, 등을 대어놓는다.

그러고 나서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본다.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가 접었다 폈다 흔들흔들 한다.

작은 언덕들이 있는 잔디밭 공원 같다. 소파는 몸이 장난치기에 더할나위없이 적당하다. 원래의 의도대로 사용한 적이 거의 없어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다보니 나는 기회가 있을 때면 항상 누워있다.

내가 소파를 만든다면, 작은 언덕같은 소파를 만들어야지.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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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공휴일

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메일을 쓰고,
식탁에서 코딩을 하고 한켠에서는 양주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탁구대가 있는 방에선 핑퐁핑퐁 탁구를 치고,
커다란 티비가 있는 거실에서는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오전에 밖에 구경을 나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들고 들어오고.

인도의 공휴일. 인도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풍경.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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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in the air

영화 Up in the air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보고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늘 내용과는 비껴간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무, 나무의 나이테가 생각났다. 일종의 번뜩이는 깨달음이랄까.
나무는 매 년, 정확히는 사계절을 거칠 때마다 나이테가 생긴다. 사람은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이 말하는 나이라는 것이 그것과 같은 거겠지. 사람도 각자의 마음에, 혹은 정신에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 같다. 나무가 그렇듯. 그렇더라도 겉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하는 것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더 크게 자라나고 가지를 뻗고 잎들을 키워가고 뿌리를 뻗어나가고.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가고, 그렇게 스스로 가꿔간 자신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소용없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므로 억울해 해봐야 결국 도돌이표다.

십대는 걱정 없이 활기차게 그 안의 세상을 즐기고 배우는데 가장 좋았고, 이십대는 새롭게 펼쳐진 세상을 마음껏 누비고 일탈을 하기에 가장 좋았고, 삼십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그 삶을 즐기고 힘들어하고 깨닫고 그런 일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깨우쳐가는데 좋다. 나만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이긴 하다. 그 삼십대의 가운데에서는, 거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내가 요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사십대에 다시 되돌아보면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는 것을.

영화에서는 17년을 일한. 25년을 일한 직원이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17년이라. 나는 한 직장에서 그렇게 일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폭풍 속에서는 불가능 할 것만 같다. 언젠가는 폭풍이 그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폭풍속을 계속 헤쳐가야 한다면 내가 성장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럼 나는 그 폭풍을 즐기고,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회사의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함께 겪는 1년차의 후임, 나는 그 나이 때 눈이 오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가을에는 공부 안하고 학교를 산책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장마 때는 우산을 쓰고 빗물 고인 웅덩이를 차박차박 걸어다녔다. 과연 나는 이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이겨낼 정도의 나이테를 쌓았나?

라고 생각을 해보는 밤이다.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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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timistic UI 글을 읽고.

원 글 : True Lies Of Optimistic User Interfaces

주제 : Optimistic User Interfaces
(단어단어만 해석해서, ‘낙관적인 UI’ 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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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요약 : 사용자의 기다림을 줄이자. 더 줄이자. 예측가능한 범위라면 미리 ‘OK’라고 하자.
– 요청에 대한 성공률이 97~99%이고, 에러가 1~3%정도일 때는 적용할만 하다.
– 평균 응답시간이 2초 이내라고 생각된다면 적용할 만 하다.
– 다만 명확한, 잠재적 에러는 클라이언트에서 사전에 감지하여 서버 요청을 하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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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하는 설명 : within 2 seconds of interacting with an element, the user will be in a flow and focused on the response they are expecting. If the server returns an error during this interval, the user will still be in “dialogue” with the interface, so to speak. (아하 라고 했지만 한글로 적으면 틀릴까봐 각자 해석하는 것으로…요지는 ‘네, 감사합니다. 아! 손님 잠시만요. 제가 잘못 계산했네요’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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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 가벼운 내용이라 생각해서 이 닦는 동안 잠깐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 몇십분을 읽었다. 역시 영어를 잘 해야 한다. 내용도 이건 뭐 거의 소논문 수준. 1년 넘게 한 모바일 서비스만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아직도 우리앱은 팝업의 UI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버튼의 규칙도 제멋대로인데다, 버튼의 enable/disable 규칙도 허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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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고있는 서비스 측면에서 : 서비스를 하고 있는 인도 네트워크와 산업환경의 특성상 실패율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요청-응답 속도는 말도안되게 길어서 예시의 테크닉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글쓴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접근방식’은 어딘가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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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업무 측면에서 : UI디자이너든 GUI디자이너든 알아둘만한 내용이다. 뭐, UX디자인은.. 요즘은 UI/GUI 전부다 UX디자이너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이런 측면의 고민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있지 않는 이상 생각하기도 힘들고 다뤄야 할 대상은 아니다. 디자인 전문 에이전시는 다른 측면의 깊이를 다뤄야 하니까. 일반적인 워터폴 프로세스에서는 그 이후이후이후의 단계 쯤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적용할만한 부분을 고민하고 개선하고 학습할 만 하고, 에이전시의 디자이너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일단 킵! 해두고 다른 지점에서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만 하다.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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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하는 채찍질 : (적었다가 삭제) 없다. 정신없다. 우리 UX디자이너와 GUI디자이너가 잘 해주겠지?
렌즈로 보는 세상이라고 친다면, 배율을 1x로 해서 서비스 전반의/앞으로의 정책을 보았다가, 배율을 4x로 해서 지금 진행하는 스프린트를 보았다가, 위치를 옮겨서 연동할 외부 서비스를 보았다가, 배율을 8x로 해서 현재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점을들 보았다가, 배율을 40x로 해서 UI의 디테일을 고민하는 것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 문제는 실제 만들 생각은 안하고 망원경만 계속 쳐다보고 있는 느낌인데, 빨리 정리정돈 하고 이런 것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하자.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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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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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어두운 지하실의 조명을 모두 끄고 플라네타리움을 켠다. 지이이잉 모터가 빠르게 돌고 드르르 기어가 천천히 도는 소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은하수와 별빛이 가득. 가만히 몇번이나 회전하는 별빛의 풍경을 본다. 어둠, 지이잉 드르르 소리만, 계속 저기 어둠 속에 맺히는 빛의 점들을 본다.
옛날.

  • Published: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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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수필

꽃송이 같은 첫눈 – 강경애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안 나는지 마치 촛불을 켜대는 것처럼 발갛게 피어오르던 우리 방 앞문이 종일 컴컴했다. 그리고 이따금식 문풍지가 우룽룽 우룽룽 했다. 잔기침 소리가 나며 마을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머니, 어디 갔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치마폭에 풍겨 들어온 산뜻한 찬 공기며 발개진 코끝.
“에이, 춥다.”
어머니는 화로를 마주앉으며 부저로 손끝이 발개지도록 불을 헤치신다.
“잔칫집에 갔댔다.”
“응. 잔치 잘해?”
“잘하더구나.”
“색시 고와?”
“쓸 만하더라.”
무심히 나는 어머님의 머리를 쳐다보니 물방울이 방울방울 서렸다.
“비 와요?”
“비는 왜, 눈이 오는데.”
“눈? 벌써 눈이 와. 어디.”
어린애처럼 뛰어 일어나자 손끝이 따끔해서 굽어보니 바늘이 반짝 빛났다.
“에그,, 아파라, 고놈의 바늘.”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옥양목 오라기로 손끝을 동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송이로 뽀하다. 그리고 새로 한 수숫대 바자갈피에는 눈이 한 줌이나 두 줌이나 되어 보이도록 쌓인다. 보슬보슬 눈이 내린다. 마치 내 가슴속가지도 눈이 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깨끗하게 한다. 무심히 나는 손끝을 굽어보았다. 하얀 옥양목 위에 발갛게 피가 배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이런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싸늘한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디를 특별히 바라보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았다. 꽃송이 같은 눈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신동아』, 1932. 12

가장 시원한 이야기. 정지용

그날 밤 더위란 난생처음 당하는 것이었다. 새로 한 시가 지나면 웬만할까 한 것이 웬걸 두 시 세 시가 되어도 한결같이 찌는 것이었다. 설령 바람 한 점이 있기로서니 무엇에 쓸까만 끝끝내 바람 한 점이 없었다. 신을 끌고 나가서 뜰 앞에 선 나무 밑으로 갔다. 잎알 하나 옴칫 아니 하는 것이었다. 옴칫거리나 아니하나 볼까 하고 갸웃거려 보았다. 죽은 고기 새끼 떼처럼 차라리 떠 있는 것이었다. 나무도 더워서 죽은 것이었던가? 숨도 막혔거니와 기가 막혀서 가지를 흔들어 보았다. 흔들리기는 흔들리는 것이었다. 마음이 적이 놓이는 것이었다. 참고 살기로 했다. 아무리 덥다 해도 제철이 오고 보면 이 나무에 새로운 바람이 깃들 것이겠기에!

『정지용전집』, 민음사, 1988에서 재수록.

  • Published: 9 month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