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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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이야기

이것 조차 옛날 이야기이지만, 친구에게 옛날에 내가 보냈던 편지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생소했다.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나의 생각과 글이, 누군가는 기억하고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 신기하다.
 
하지만 특별히 군대에 있을 때에는 가끔 편지지에 글을 쓰기 전, 노트에 먼저 편지를 썼었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누군가에게 썼던 편지의 내용’이 약간 남아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이메일의 시대로 넘어오며, 내가 보낸 편지는 이제 나의 편지함에도 남게 되었다. 보내고 난 뒤에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않으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답장을 받게 되면 바로 아래 나의 편지가 보인다.
 
이제 나의 이메일함은 일간신문함이나 고지서통지함 비슷하게 바뀌어버렸는데, 오랜만에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메일들(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을 보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구나, 예전엔 왜 그랬지, 예전엔 이랬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지, 왜 이런 생각을 안하고 살지.
 
예전의 편지보다는 밋밋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쓴 이야기와 답장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점은 이메일이 좋다. 그 때의 나, 그 이전의 나, 모두 다른 내가 누군가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춰보면 재미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생각과 감정의 사진 같다.
 
물론 그런 사진 한 장이 생기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 Published: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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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지대넓얕을 열심히 들으며, 나와 비슷한 연배인 사람들인데도 지식도 많고 생각도 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특히 강연이나 세미나 혹은 모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던 나인데, 이 사람들의 강연은 듣고 싶어졌다.

작년 11월에는 독실이의 강연을 들었고, 12월에는 채새장의 북토크를 들었다. 북토크,북콘서트는 뭐지… 라고 생소한 영어를 보며 강연일까? 했는데, 한글로 하면 ‘책 출간 기념 강연’ 정도가 되겠다. 사실 채사장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고, 이번에 책을 출간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채사장을 직접 만나 채사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북토크는 책 예약구매자에 한해 추첨을 통해 초대장을 준다고 하여 나는 책을 예약구매 했다.

채사장의 북토크는 자신이 쓰고있는 책들의 전체적인 관계, 그리고 이번에 출간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계. 나와 타인, 나와 세계, 나와 죽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와는 정말 거리가 멀었던 단어, 관계.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관계’의 정의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생각하는 채사장의 정의가 좋았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을 아래 적는다.

세계와 자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 선과 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근원인 동시에 결과가 된다.

세계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계가 자아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반면 다른 이들은 세계가 자아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에 의해 해석된 무엇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을 ‘실재론자’로,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을 ‘관념론자’로 이름 붙여서 구분짓는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러한 용어로의 분류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은 어떤 관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어떤 세계관을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는가?
p.32

 

‘세계’는 언제나 ‘자아의 세계’다. 객관적이고 독립된 세계는 나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산다.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의 이름이 ‘지평,horizon’이다. 지평은 보통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말하지만, 서양철학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 자아의 세계가 갖는 범위로 사용한다.
즉, 지평은 나의 범위인 동시에 세계의 범위다. 우리는 각자의 지평에서 산다.
그러므로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ㅔ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p.33-34

 

하지만 상식적인 시간관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나 이외의 모든 것, 즉 사물, 동물, 타인은 원인과 결과라는 시간의 법칙에 얽매여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시간은 중첩되고 역행하며 드러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나에게는 미래가 현재의 원인이기도 하고 과거가 현재의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내면에서 원인이 되는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다.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현재는 미래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아의 내면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p.98-99

 

우리는 세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나의 세계 안에는 무엇이 있고,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혹시 나는 고집스레 단일한 진리관을 움켜쥐고 빈곤하게도 이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닌지를. 또한 외부의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단순히 비진리라 규정해버림으로써 그것을 안 봐도 괜찮은 것들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것은 아닌지를. 당신이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점검해봐야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세계가 흑과 백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p.156-157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질문하거나, 질문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질문한다. 나는 특히 인류가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중요한 질문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의심이 오래될수록 의심이 실제처럼 느껴지듯, 질문이 오래될수록 질문은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p.230

  • Published: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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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하야마 아마리

쉬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지만, 사실 마음 한켠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야지’, ‘책을 많이 읽어야지’, ‘영화를 많이 봐야지’, ‘무언가 만들어야지’라는 희망사항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중 하나, 책을 읽겠다고 한 것 중 목록에 있던 한 책을 읽었다. 동료가 최근에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약 두시간 만에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매를 했는데, 분류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되어있었다. 소설인줄 알고 있었는데… 하고 보니, 필명을 따로 쓰는 작가의 실제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초반 부에서,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특기도 없다.
나는 매일 벌벌 떨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만 벌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이렇게도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처음엔 물이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끓는 물에 들어온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하고싶은 게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외모도 보잘 것 없는 여성, 하루하루 먹고사는데에도 힘겨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던 자신의 29살 생일 날, 자살을 하려고 생각하다가 포기하고 있는 와중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단 한번이라도 저 꿈같은 세상에서 손톱만큼의 미련도 남김없이 남은 생을 호화롭게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1년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서 며칠만이라도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화롭게 살고, 서른이 되는 다음 생일 날 목숨을 끊기로 한다.
이렇게 마음먹은 뒤부터 작가는 낮에는 일반 회사의 파견직원, 밤에는 긴자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누드 모델을 하게 된다. 그렇게 1년을 지내며 예전엔 없었던 진정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다양한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호스티스 친구들과 동창 친구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상류사회의 체험이나 여러 연륜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인생을 보게 된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작가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며칠간의 호화로운 생활과 도박을 하고, 서른이 된 날 아침, 결국 자신이 가져온 돈 보다 5달러를 더 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작가는 그 5달러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 결국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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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야기는 좀 뻔할 수 있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의미있게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제의 일이었다는 것과, 의미있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직접적으로 ‘여기가 새겨들어야 할 곳이야’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문답 같은 자기계발서나 이야기를 흥미있게 풀어내는 소설이 아닌 그 중간지점의 느낌이었다. 어찌보면 술을 마시며 옆에 있는 누군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듯이. 그리고 작가는 그것이 ‘어때, 대단하지?’ 라고 들려주기 보다는, ‘나는 이때 이렇게 느꼈어’ 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응원의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하고, 소설같은 흥미로움, 짜릿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려는 것들도 ‘목표에 도달하고 나서’ 보다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여러가지 경험들과 생각들, 깨우치게 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나서 삶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삶에서 자신이 나약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에서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술을 마시며 옆사람이 들려주었다면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작 나는 쉽게 마음먹기 힘들다. 1년동안의 작가의 삶도 언뜻 생각해보면 힘들긴 했지만 호스티스라는 생활을 무사히 잘 거쳐간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는 정말 없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초반부에 나왔던, 끓는 물에 들어온 개구리의 이야기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그런 부분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와 같은 맥락에서, 소설에 나온 인도 요리사 친구가 했던 말이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에서 먼지에 덮여있던 종이에 바람을 훅 불어준 것처럼.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가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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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늦은 밤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이 곳에서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그 동안 관심을 많이 가져주지 못한 것이, 혼자 있는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떠나오기 며칠 전이라도 생각을 해둘 걸 그랬다. 떠나는 날 아침에 겨우 생각해낸 어설픈 방법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의 물을 가득 흐르게 하고, 잎과 가지를 흠뻑 적셔주는 것으로 잘 지내주었는데, 이제 2주 반이 지났다. 옆에 있지 않아 모습과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그래도 잘 큰 녀석이니까 잘 버티고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햇볕이 잘 들도록 간유리는 열어두고 왔는데 밤 공기가 조금 차가우려나. 몇 주째 냉장고 소리 밖에 들리지 않을 집에서 심심하려나.

언제나 동일한 관심으로 대해 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하지만 그게 맞는 것인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석은 왜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인지, 한탄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봄처럼 가을처럼 풍족하고 행복한 때가 있기도 하고, 가뭄이나 장마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힘든 때도 있다. 그게 생각보다 길 때도 있고. 그렇다고 마냥 버텨달라고 하면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혹시나 벌써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미안.

  • Published: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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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아침

한 겨울의 아침, 창가의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공기 속에 잠이 깬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꽁꽁 덮는다. 밝은 햇살 속에서 눈을 감고 겨울 아침 기운을 생각한다. 오늘은 방청소를 할까, 생각을 한다.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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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오랜만에 이틀 동안 아무런 일 없이 보냈다. 밤, 학교를 보고싶어 왔다. 벌써 계절이 바뀐건지 시원한 바람. 평소에는 긍정적인 감정이나 복잡한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학교에 오면 그런 감정들이 살아난다.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감정, 감각들이 있다는 것이 떠올려진다. 6년을 집보다 더 집처럼 지낸 커다란 공간. 다락방의 상자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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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반딧불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고
끝도없이 이어지는 밤의 사이를
반짝이는 빛을 따라 거닐었었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반딧불 반딧불
쏟아지면 사라지리 애처로운 반딧불
여름밤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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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기억속에 몸을 기대면
어느새 밤하늘 가득히 별이 내리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우리들 우리들
쏟아지면 사라지리 아름다운 시간들
여름밤 반딧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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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니 향기가 사랑스런 모습이
다시떠올라
잊었다고 생각한 그 밤에 거리가
마치 마법처럼 피어오르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우리들 우리들
쏟아지면 사라지리 아름다운 시간들
여름밤 반딧불처럼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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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의 공연

작은 무대가 있는 어두운 카페. 무대 가까이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공연을 기다린다. 작은 촛불과 까만 고양이, 나무의자. 마치 커다란 인형극 장소처럼 생긴 무대에 드럼과 키보드, 기타받침과 마이크와 선들이 얽혀있다. 첫 밴드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이 밴드는 지하철 이야기와 네이트온의 추억을 노래한다. 오래전의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듯이. 두 번째 밴드는 아주 깊은 밤을 노래한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노랫소리가 인형극 무대에 잘 어울린다. 까만 고양이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걸어다니며 공간을 한껏 즐긴다.

  • Published: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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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오랜만에 전통적인 디자인을 다루는 책을 읽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최근 몇년 간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주제는 훨씬 디자인의 원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약간은 두서없고, 약간은 협소하고, 약간은 지루하다. 물론 내가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겠냐만은, 책 전체가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가끔씩 눈에 띄는 이야기, 눈에 띄는 사례들이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얻은 것이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스크랩 한 내용.

한편 사토 마사히코는 이 스탬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을 때는 환영이라는 느낌의 스탬프가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스탬프를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 보니 현재의 중립적인 상태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디자인에는 쓸모없이 남아도는 메시지가 너무 많으니까.” 현재의 스탬프도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있니 않은가? 괜히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므로 현실적인 의미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답을 찾았음에도 그것을 더욱 정밀하게 수정하는 신중함과 성의는 원리를 실용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세한 센스의 일부분이리라.
p. 50

 

이런 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위를 치밀하게 탐구하면서 그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후카사와의 방식이다. 이것은 ‘어포던스’라는 새로운 인지이론을 연상시키는 사고방식이다. 어포던스는 행위의 주체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을 성ㄹ립시키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나가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서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afford)’고 할 수 있다.
p. 63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단 취급하는 영역을 시각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촉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각 채널을 향하여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전시회 티켓. 인쇄된 사진이나 문자는 시각적인 것이지만 그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 종이는 추상적인 하얀색 평면이 아니다. 손끝에 섬유의 질감을 전해 주는 물질로서 미세하게나마 무게감도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손바닥에서 둥글게 말기도 하고 반으로 접기도 한다. 즉 그것은 촉각의 자극을 싣고 있다. 그리고 만약 거기 인쇄된 것이 깊은 숲의 사진이라면 그것은 시각에 그치지 않고 청각과 후각 등의 기억까지도 미묘하게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뇌리에는 몇 가지 자극의 축적에 의한 복합적인 이미지가 태어나게 된다. 말하자면 정보를 다루는 인간은 감각 기관의 다발이다. 이렇게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디자이너는 각종 정보를 조합한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p. 71

  • Published: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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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노트의 재활용

오랜만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칼과 자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

최근에 회사 일로 짧은 출장을 자주 다녀와서,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이미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사용중이었지만,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기존의 보조배터리는 예전에 샀던 소가죽을 덧대어 한땀한땀 바느질을 했었다. 질감이 참 좋았지만, 두께가 두꺼운 것이 흠이었다. 샤오미 배터리의 재질은 맥북과 아이폰을 닮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제품의 기능과 보관형태에는 맞지 않는다(좋은 점은 뭔가 덧대기 좋다는 것). 보조배터리는 가방에 보관하게 되고, 가방에는 스크래치가 날만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샤오미 보조배터리도 무언가 덧대기로 했다.

내 방에는 쓸데없이 모아둔 물건들이 참 많은데, 이번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소가죽은 두꺼웠고, 여러 두께와 재질의 종이는 내구성이 부족했다. 얇은 천은 질감과 마감이 아쉬울 것 같았고, 캔버스천으로 쓸만한 것은 색이 몇 개 없었다. 한 5분 정도 방을 뒤적거린 뒤, 다 쓴 몰스킨 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몰스킨 노트를 집었을 때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좋겠군.

뭐, 그렇다고 몰스킨 노트의 커버 재질이 아주 고급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느끼는 그 감촉을 계속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방에서 쉽게 바로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까.
스타트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는데, 사실 그 동안 노트에 필기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는 몰스킨 노트를 사용하여 필기하고 아이디어를 그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는 예전에 썼던 여러 몰스킨 노트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을 많이 타서, 세월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적당한 녀석을 하나 골라서, 슥삭슥삭 자르고 붙여서 완성을 했다.

그렇게 멋들어지지 않아도 나만을 위한 감촉을 지닌 물건이니까 마음에 든다.
기능적으로는, 가방 안에서 다른 물건들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특히 양쪽 끝 부분을 한번씩 접어서 약간의 내구성을 가지게 한 뒤, 배터리보다 1mm 정도 더 길게 재단을 해서 끝부분이 스크래치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차갑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

몰스킨 노트는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커버의 질감, 그리고 종이의 색감, 종이의 질감, 그리고 왠만한 노트보다는 나은 종이의 기능적 품질, 그리고 마지막을 완성하는 고무밴드가 마음에 드는 점인데, 보조배터리도 여러 측면에서 몰스킨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제나 13인치, 24인치 모니터를 바라보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고, 회의만 하며 만져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가끔씩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손에 잡히는 도구를 사용하고, 내 손의 정확성을 느껴보고 여러 질감의 물건을 다루게 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아니, 이건 공예에 가까운 것일까. 배운 뿌리를 못잊는 것일까. 실제로는 다른 것인데 나는 ‘디자이너’라는 틀을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뭐! 디자이너라는 틀에 끼워맞추지 않더라도, 이런 생활공예는 누구나 해볼만 하다. 우리 조상들은 다들 공예가 아니었나.

마지막으로, 양털 깎인 양처럼 되어버린 나의 몰스킨 노트. 그래도 의미있게 재활용 되어서 주인의 손을 더 오래 타게 되었으니까 좋게 생각합시다 :)

  • Published: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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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풍경을 자주 보았다.

스물 다섯 이후로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채웠다. 매일 나무들의 숲이나 강을 보면서 지냈고, 그 풍경 속을 거닐었다. 음악을 듣고, 담배를 태웠다.

이제는 고등학교때 느꼈던 감정과, 15년 전, 10년 전, 5,6년 전 느꼈던 감정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감정을 대하는 스펙트럼이 줄어든 것일까, 혹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늘어나서 예전의 감정들이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실, 풍경은 어릴 때 가장 많이 보았다. 풍경 속에 살았다. 저수지 둑에서 놀이를 하고, 아카시아나무 길에서 꽃을 따먹고, 딱딱한 나무껍질을 만지며 사슴벌레와 놀았다.

군대에서도, 숲 속에서 살았다. 봄에는 봄꽃을 보고, 여름엔 비오는 숲속을 거닐고, 가을엔 후임을 데리고 단풍길 산책을 다니고, 겨울엔 아침에 새하얀 눈밭을 밟았다.

강이 보이는 풍경. 가끔 함께 풍경을 보고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이 생각난다는 말은, 참 좋다.

  • Published: 12 month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