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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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언젠가 강의에서도 들은 이야기지만, 피터드러커의 글들은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읽기 어렵지 않고, 비 전문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글들이다.
예가 많은 것도 좋고, 이 책도 한 권 사서 가끔씩 꺼내 읽어볼만한 책이다.
아래는 몇 가지, 책의 내용을 적은 것.

 

지식근로자는 스스로 몰입힌다

공헌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 자신의 전문 분야, 한정된 기술,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부서에만 집중하던 관심을 넘어 조직 전체의 성과를 올리는 데로 관심을 확장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관심을 외부 세계로 돌리게 하는데, 외부 세계야말로 결과가 있는 곳이다.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 자신의 기술, 또는 자신의 부서가 조직 전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조직의’ 목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소비자, 단골고객, 또는 환자의 처지에서 생각을 하게 될 터인데, 그들이야말로 조직이 무엇을 생산하든 -그것이 경제적 재화, 정부의 시책, 또는 의료 서비스든 간데- 조직이 존재하는 궁극적 이유가 된다. 그 결과, 그가 하는 일과 일하는 방식은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다음은 미국 정부 산하의 대규모 과학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나이 많은 출판국장이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는 1930년대 이 연구소의 설립 당시부터 일해왔으나, 그는 과학자도 훈련받은 작가도 아니었다. 그가 발행하는 출판물들은 종종 전문가적인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일류 과학기자가 기용되었다. 간행물들은 즉각 매우 전문지다운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간행물들의 주요 독자층인 과학자들 사회에서 잡지의 구독을 중단했다.
이 연구소와 오랫동안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매우 존경받는 어느 대학교 소속 과학자는 연구소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의 출판국장은 ‘우리들을 위해’글을 썼는데, 새로 부임한 국장은 ‘우리들에게’글을 쓰고 있다.」
퇴임한 출판국장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이 연구소가 성과를 올리는 데 내가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이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은 「나는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외부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일하려는 마음이 생기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연구소 내부의 주요 문제, 주요 결정, 그리고 심지어 논쟁까지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 같은 편집 방침은 종종 연구소 소장과 정면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드는 출판물의 존재가치는 연구소 내부 사람들의 입맛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간행물을 읽고 얼마나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이 곳에 지원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유능한 과학자인지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p.64-65

지식근로자로 하여금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방법

지식근로자가 공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각별히 중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지식근로자로 하여금 공헌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지식근로자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디어, 정보, 그리고 개념을 생산한다. 더욱이 지식근로자는 근본적으로 전문가다. 사실 그는 원칙적으로 한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배웠을 때만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된다. 달리 말해, 그가 전문화되었을 때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 그 자체는 단편적인 것이고, 또 쓸모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가는 결과를 생산하기에 앞서, 자신의 산출물을 또 다른 전문가의 산출물과 통합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팔방미인격인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전문가로 하여금 그 자신과 전문지식을 활용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는 자신의 산출물을 누가 사용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문가가 산출한 단편적인 것을 활용해 완성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알고 또 이해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흔히 「과학자」와 「문외한」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문외한들은 과학자의 지식, 전문 용어, 도구, 그리고 기타의 것들을 어느 정도는 배워야 한다는 요구를 쉽게 한다. 그러나 만약 사회가 그런 식으로 나누어졌어야 한다면, 그것은 100년 전의 일이다. 현대 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이고, 각자 필요한 도구를 갖고 있으며, 고유한 관심 분야, 그리고 자신들만의 전문 용어를 갖고 있다. 반면에 과학들은 모두 세분화되어 특정 분야의 물리학자는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는 물리학자의 관심사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원가계산 담당자도 독자적인 가정과 고유한 관심 분야, 그리고 독특한 용어에 기초한 특수한 지식 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생화학자 만큼이나 「과학자」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시장 조사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정부기관의 예산 담당자, 병원의 정신질환 사례연구자들도 과학자들이다. 그들 각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해시켜야만 한다.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어떤 분야의 문외한은 전문가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거나 노력해야만 한다는 가정, 그리고 전문가는 소수의 또 다른 전문가 동료들과 말이 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야만인의 오만이다. 심지어 대학이나 연구소 내부에서조차도, 이런 태도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너무나 흔한 태도- 는 전문가를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들고 그의 지식을 진정한 학식이 아니라 장식적인 현학으로 변질시킨다. 특히 지식근로자가 되고 싶은 사람, 즉 자신의 공헌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산출물」의 유용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지식근로자들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동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높은 지향에 따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은 조직 내의 다른 사람들, 상사, 부하,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들에게 언제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이 우리 조직에 공헌해야 할 몫을 다하기 위해 내가 당신에게 해야 할 공헌은 무엇인가? 당신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떤 형태의 나의 공헌을 필요로 하는가?」

예를 들어 원가 계산 담당자가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자기 분야의 기본적인 가정가운데 무엇이, 자신이 제공하는 자료를 사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자신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지만- 다른 부문의 관리자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인지를 즉각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는 중요한 통계 숫자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거의 보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필요한 숫자가 어떤 것인지를 곧 알게 된다.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제약회사의 생화학자는, 자신이 발견한 신물질이 생화학자가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 임상의사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되어야만 그것을 임상의사들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단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생화학자의 연구 결과가 신약으로서 햇빛을 볼 기회라도 갖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화학자가 발견한 그 신물질을 임상실험에 적용해보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임상의사일 것이다.
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부기관의 과학자라면, 어떤 연구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계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국회의원들에게 설명해야만 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는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즉 일련의 과학적 질문에 대해 그 답을 미리 예상해두는 일 말이다.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의미 있는 유일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제너럴리스트란 자기 자신의 좁은 분야의 지식을 모든 영역의 지식에 연결시킬 수 있는 전문가다. 사실 몇몇 좁은 분야의 지식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도 적지않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제너럴리스트는 아니다. 그들은 몇몇 분야에 걸친 전문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세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라 해도, 그는 세 분야 모두 마찬가지로 편협한 인간일 수도 있다. 자신의 공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자신의 한정된 전문 분야를 조직 전체에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혼자 힘으로, 수많은 지식 분야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공헌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필요, 방향, 한계, 그리고 지각방식을 충분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배운 사람의 오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오만은 지식을 파괴하고, 지식이 갖는 아름다움과 유효성을 갉아먹는 퇴행성 질병이다.
p.74-78

강점에 기초한 인력 배치

강점을 활용해 생산성을 올리는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가장 먼저 부딪치는 분야는 인적 자원의 배치다. 목표를 달성하는 최고경영자는 발령을 내거나 승진을 시킬 때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최고경영자는 인적 자원 배치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대상자의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점을 최대화하기 위한 결정을 내린다.

링컨 대통령은 신임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군이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상표를 알면, 똑같은 술을 한두 병씩 다른 장군들에게도 보낼 텐데.」 켄터키와 일리노이 개척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링컨은 술과 그 해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군의 장군들 가운데, 유독 그랜트만이 항상 전략계획을 제대로 세웠고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랜트 장군의 사령관직 임명은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랜트를 지명한 링컨의 작전이 성공한 이유는 그가 전쟁터에서 검증된 장군의 능력, 즉 강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술을 안 마신다는 사실, 즉 단점이 없다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은 그 점을 어렵게 깨달았다. 링컨은 그랜트를 임명하기 전에, 별다른 단점이 없다는 기준으로 3~4명의 장군을 잇따라 임명했었다. 그 결과 북군은 병력과 병참 면에서 월등히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1861~64년까지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지 못했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는 강점을 근거로 부하 장군들을 선발했다. 스톤월 잭슨장군을 비롯해 리 사령관 휘하의 장군들 모두 분명히 큰 단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리 사령관은 그러한 단점은 전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올바르게- 판단했다. 반면에 리 사령관 휘하의 장군들은 각기 한가지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리 장군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한 것은 그 장점이었으며, 거듭 말하거니와 오직 그 한 가지 강점이 있었다.
그 결과 링컨이 선발한 「무난한」장군들은 리 사령관 휘하의 「한 가지 목적에만 쓰이는 도구」, 다시 말해 한정된 분야에서지만 매우 강력한 능력을 지닌 장군들에게 거듭 패퇴했던 것이다.

아무런 단점이 없는 사람을 찾는다거나 그런 사람을 배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기껏 평번한 인사배치로 끝나고 말 것이다. 세상에 단점은 전혀 없고 강점만 있는 그런 사람(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적합한 용어가 ‘완전한 인간’,’성숙한 개성’,’세련된 인격’또는 ‘제너럴리스트’이든 간에), 즉 「다재다능한」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인력관리를 하는 것은 무능한 조직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조직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름길이다. 큰 강점을 지닌 사람은 언제나 커다란 단점도 지니고 있는 법이다. 산봉우리가 높은 곳에 계곡이 깊듯이 말이다. 그리고 온갖 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의 지식, 경험, 그리고 능력 등 총체적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아무리 위대한 천재라도 낙제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사람은 없다. 오히려 「어떤 분야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 그리고 그 결과 강점을 활용하기보다는 약점을 줄이려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약한 인간의 표본이다. 아마도 그는 다른 사람들의 강점을 파악하고는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하가 능력 있고 목표를 달성한다는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미국 철강산업의 창건자인 앤드류 카네기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택한 「여기 자신보다도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인간이 누워있다」라는 글귀보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도, 또 더 좋은 처방도 없다.
물론 카네기의 부하들이 우수했던 것은 그가 부하들의 강점을 찾아서 그것들을 일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카네기의 청강회사 임직원들은 하나의 특정 분야, 그리고 특정 일에서만 남보다 「더 우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말 할 것 없이 카네기야 말로 그들 가운데 목표달성을 가장 잘 하는 경영자였다.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의 강점을 활용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휘하 장군들 가운데 한 사람이 리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했고, 또 그것 때문에 전략을 망쳐놓았다. 이러한 실수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평소에는 감정을 잘 억제했던 리 장군이 노발대발했다. 그의 감정이 누그러졌을 때 한 부관이 정중하게 물었다. 「왜 그를 지휘관 자리에서 해임시키지 않으십니까?」 리 장군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은 듯 부관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그는 전쟁에서 이기고 있잖아」

p.88-91

  • Published: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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