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초

제3 단
만사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사랑이나 그리움의 정취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은 사나이는 몹시 부족된 감이 있어서, 마치 아름다운 옥잔의 밑이 빠진 것같은 기분이 들 것이 틀림없다.
밤이슬, 찬서리를 맞으며 실의를 달래어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하고,
부모의 꾸지람이나 동네 사람들의 뜬소문 따위에 마음을 쓸 여유도 없이 이런가 저런가 사색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항시 혼자 쓸쓸히 누워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러한 일들이 오히려 즐겁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호색으로 지새운다는 것도 아니며, 한편 여자가 볼 때 친밀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일이 남자로 태어난 행복이라고나 할까.

제7 단
묘지를 뒤덮인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사라질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반짝이고 있으며, 화장터에서 연기가 흩어질 줄도 모르는 채, 인생의 목숨이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머물러 살아 남는 그러한 것이라면, 아마 애련의 정서 같은 것도 없으리라, 이 세상은 무상하다고 하나 바로 그 무상한 데가 좋은 것이 아닌가.
이 세상의 생물을 보더라도 사람만큼 수명이 긴 것도 없다.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을 다 못 기다리며, 한 여름의 수명뿐인 매미는 봄도 가을도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에누리없이 춘하추동한 해를 살아가는 것만도 더없이 흐뭇한 일이다.
아쉽고 섭섭하다 생각하면 천년을 산다 해도 하룻밤의 꿈과 같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살아 남지 못할 이 세상에서 보기 흉하게 노쇠한 자기의 몰골을 보아서 무엇하리. 명이 길면 망신살이 뻗치게 마련이다. 길어도 40을 다 못 채우고 죽는 것이 보기 싫지 않고 적당하다고 하겠다. 그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면, 염치없이 보기 흉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끼여들기를 원하고, 서양이 지는 황혼의 주제에 자식 손자를 귀엽다 어루만지며, 그들이 번영하는 장래를 볼 때까지의 수명을 바라며 덮어놓고 속된 욕심을 탐하는 마음만 깊어져, 인생의 정취나 세상의 인정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2 단
무슨 일이거나 옛 시대의 것만이 그립게 생각된다. 현대는 왠지 자꾸만 저속해지는 것만 같다. 저 목공들이 만든 기물 따위도 옛날 것의 모양이 훨씬 흥미있어 보인다. 편지의 문구도 옛날의 것은 모두가 멋지다. 여느 때 주고받는 말도 한심스럽게 되어가는 듯하다.

제31 단
눈이 매우 아름답게 쌓인 날 아침, 용건이 있어서 어느 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의 이 아름다운 눈을 어찌 생각하느냐는, 한마디의 말도 쓰지 않는 그러한 비뚤어진 분이 부탁하시는 일을 어찌 들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하고 딱하신 마음씨이십니다”
라고 답장에 씌어 있었던 것은 매우 즐겁고 멋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고인이기에, 이렇게 조그만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제32 단
9 월 20일경, 어느 분을 수행하여 밤이 새도록 달을 보며 거닌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문득 생각이 난다면서 수행하는 나에게 전갈하여, 어느 집에 잠시 들르셨다.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풀잎 위에 담뿍 이슬이 맺혀 있는 뜰에 섰노라니, 아마도 평소 옷에다가 훈향을 하는지, 향내가 그윽하게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 간다. 누가 이토록 고요하고 멋있게 사는지, 정말 마음속까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분(모시고 간)은 적당한 동안 계시다가 나왔으나, 그런 일조차 품위있게 느껴져서 몸을 달그림자에 숨기고 보고 있자니, 그 집 주인은 손님을 전송한 후, 미닫이문을 조금 더 열고는 조용히 달을 보는 듯했다. 만일 그냥 안으로 들어가버렸더라면 얼마나 실망이 되었을 것인가. 손님은 떠나고,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알 턱이 없는데도 이와 같은 일은 평소에 쌓아 온 수양에 따른 것이리라. 애석하게도
그분은 얼마 후에 별세했다는 소문이었다.

제36 단
오랫동안 찾아가지 못하고 있을 무렵, 얼마나 원망을 하고 있으랴 싶어 자신의 게으름이 되새겨져 변명할 말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 쪽에서 “손이 빈 하인이 있는지요? 한 사람만 보내 주십시요”라고 전갈을 보내온 것은 드물게 보는 순진한 태도여서 매우 즐겁다. 그러한 심정을 가진 사람이 좋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과연 지당한 말이다.

제38 단
명예와 이익에 쫓겨서 조용한 여가도 없이 평생을 고뇌 속에 지내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재산은 과실을 구하고 고뇌를 초래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죽고 나면, 황금을 쌓아올려서 북두칠성을 괼 만큼 많은 재산이 있다 해도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고작이다.
우매한 사람이 재물로 장식하고 눈을 즐겁게 하는 도락도 별로 신통치 못하다. 큰 수레에 살찐 말, 황금 주옥으로 꾸민 장식도 뜻있는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금은 산에 버리고 주옥은 못에 던질지어다. 이욕에 눈이 어두워 갈팡질팡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불후의 명예를 길이 후세에 남기는 일이야말로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지위가 높고 신분이 존귀한 일이 반드시 훌륭한 것도 아니다. 어리석고 시시한 인간일지라도 요행히 좋은 가문에 태어나고, 운수가 좋으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 호강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 훌륭하고 뛰어난 현인과 성인이 자기 스스로 택하여 낮은 지위에 머무르고, 시운을 만나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또한 많다. 그렇기에 오로지 고관 대작만을 바란다는 것은 두 번째로 어리석은 일이다.
지혜와 성품에 있어서는 세상에 뛰어나게 탁월하다는 명예를 남기고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명예를 사랑한다는 일은 세간에 인기가 좋은 것을 바라고 남의 칭찬을 기뻐하는 일이 된다. 칭찬을 하는 사람도 남을 비방하는 사람도 다 그다지 오래 이 세상에 머물러 잇지 않으며, 그것을 전해 듣는 사람 역시 얼마 후에는 죽어 버린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부끄러워하고 누구에게 알아 달라고 호소하겠는가. 더구나 명예란 자칫하면 비방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명성이 자기 죽은 후에 남아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명예를 바라는 것은 그 다음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그래도 더욱 지혜를 구하고, 현자가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한마디 한다면, 노자의 말대로, 지혜가 세상에 나타나면서부터 크나큰 허위가 따르게 되었고, 또 인간의 재능이란 인간의 욕망이 거듭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남의 말을 들어서 알고 남에게 배워서 안다는 것은 진실한 지혜가 아니다. 어떠한 것을 진정한 지혜하고 하면 좋을까. 장자의 말과 같이, 가와 불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 무엇을 일러 선이라고 하는가.
진정한 인간이란, 지혜도 없고, 덕도 없고, 공도 없고, 명예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이걸 알며, 누가 전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은 또 진정한 사람이 그 덕을 숨기고 어리석음을 가장하기 때문도 아니다. 원래부터 현우, 이해의 경계에서 처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혹의 마음으로 ‘명리’의 요점을 추궁해 보면 이상과 같다. 만사는 다 잘못으로 귀일 한다. 결국 논할 바가 못 되며 원할 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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