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앙드레 고르

언젠가 서점에서 제목을 보았던, 얇은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다시 보게 되어 사서 읽었다. ‘D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의 제목, 다른 것을 떠나 정말 편지형식의 글이어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몰래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편지의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슬쩍 읽어봐두고 싶었고.

표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이제 곧 여든 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릅답습니다.”

아, 젊은날의 가슴떨리는 편지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여든 둘 이라는 숫자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편지의 미학이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소개와 편지 글에도 계속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언론인이고 이 책의 글들은 그의 아내 도린에게 쓴 편지이자 출판한 글이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

당신은 곧 여든 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p.6

 

나는 결혼을 부르주아 계급의 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에서 연유하는 것인 만큼 가장 비사회적인 부분들을 통해 두 사람이 연결되는 것인데도, 그 관계를 사회화하고 법적으로 문서화하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했던 거지요. 법적인 관계란 두 사람의 체험이나 감정과는 하등 상관없이 자율화하게 마련이고, 또 그런 자율화는 그런 관계가 지닌 소명이기도 합니다. 난 또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우리의 종신계약이 십 년이나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도 우리가 원하는 계약이 될지 그걸 누가 증명할 수 있겠소?”

당신의 대답은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 당신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건 거의 사르트르의 말 아니겠습니까. p.24~25

 

그날 나는 당신이 나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현실을 읽는 내 틀에 들어맞지 않아 내가 미처 못 알아채는 실상을 당신은 파악하곤 했습니다. 나는 더 겸손해졌지요. 내 기사나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 당신에게 먼저 읽어봐달라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항상 옳은 거지!” 라고 투덜대면서도 당신의 비판을 참고하곤 했지요.

우리 부부가 서 있는 토대는 그 몇 해 동안 바뀌어 갔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내가 현실과 맺는 관계를 걸러내는 필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관계에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은 나의 단언하는 버릇 때문에 주눅들어 했습니다. 나의 그런 면이 당신이 섭렵하지 못한 이론적 지식의 표현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지요. 그러나 차츰 당신은 내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더 나아가 당신은 이론 구축에 저항했고, 특히 통계에 반발했습니다. 통계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 만큼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니 이 ‘해석’이란, 통계가 지닌 권위를 받쳐주는 수학적 엄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거지요. 나는 내 생각을 구조화하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고,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은 항상 경험주의와 무의미 속에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당신에게 반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대답했지요. 이론이란 언제든 현실의 생동하는 복잡성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이런 토론을 수십 번 했고, 나중엔 상대가 뭐라고 대답할지 미리 알 수 있게 되었지요. 논쟁은 결국 놀이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놀이에서도 당신이 늘 우위를 점하고 있었어요, 직관도 감동도 없다면 지성도 없고 의미도 없음을 당신은 인지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알았던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은 전달될 수는 있지만 증명해 보일 수는 없는, 그러나 당신이 몸소 겪어 얻은 확신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권위 -그것을 ‘윤리’라고 합시다- 는 논쟁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이론적 판단의 권위는 논쟁으로 설득시키지 못하면 무너지고 맙니다. “왜 당신은 항상 옳은 거지”라는 내 말에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내 판단이 필요하기보다는, 내게 당신의 판단이 더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죠. p. 51~53

 

당신의 병 때문에 우리는 생태주의와 기술비판이라는 영역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신문기사를 쓰기위해 대체의학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내 생각은 당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기술의학이란 훗날 푸코가 ‘생체권력’이라 부르게 된 것, 즉 각자가 자신과 갖는 내밀한 관계조차도 기술적 장치들이 장악하는 권력 중에서도 유독 공격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2년 뒤, 우리는 다시 한번 쿠에르나바카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버클리, 그 다음에는 샌디에이고 근처의 라 졸라에 있는 마르쿠제의 집에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나는 당신 몰래 등 뒤에서 당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신은 라 졸라의 드넓은 해변에서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근 채 걷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쉰두 살입니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 사진은 내가 참 좋아하는 당신 사진 중 하나예요.

집에 돌아와서 내가 오래오래 그 사진을 보고 있는데 당신이 말했지요. 아무래도 암에 걸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이미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혼자서 의심하고 있었는데 내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왜? “만약 죽을병이라면, 죽기 전에 캘리포니아를 보고 싶었어요.” 침착하게 당신이 말했습니다. p. 80~82

 

앞으로는 우리를 미래에 투사하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우리의 ‘현재’를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가져온 어슐러 르귄의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 덕분에 이런 결심을 할 힘이 생겼습니다. p. 84

 

생태주의란 삶의 양식이 되고 매일의 실천이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문명을 요구하는 것이더군요. 어느새 나는, 평생 무엇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한쪽 면만 발달시켰고 인간으로서 무척 빈곤한 존재인 것 같았지요.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차원에서 활짝 피어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p. 86

 

20년간 일한 신문사를 떠나는 것이 내게도 다른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습니다. E에게 편지를 썼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썼지요.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최근 쓴 책의 헌사에서 당신에게 그 말을 했지요. p. 87

 

나는 더 이상 -조르주 바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존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2006년 3월 21일 ~ 6월 6일 p. 89~90

 

1947년 도린과 만나 49년에 결혼했으며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공적인 활동을 접고 20여 년간 간호했다. 2007년 9월 22일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이 문구는 책 표지의 안쪽 면에 적혀있는 것인데, 잊고 있다가 책을 다 읽은 뒤 약력을 다시 읽으려 펼쳤을 때 눈에 들어왔다. 글을 쓴 뒤 바로는 아니지만, 결국 앙드레 고르는 자신이 썼던 글 그대로 행했다. 위의 두 문구가, 정말 찡하게 느껴졌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서간체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