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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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유명한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의 최근 소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읽어보았다. 빨책에서 말하길, 이전 쿤데라 소설들의 모든 이야기가 한 곳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쿤데라의 끝이 암시되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사실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이 소설만 읽어서 아쉽긴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다른 쿤데라의 소설을 읽어보리라, 그리고 나서 다시 이 소설을 한번 더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글쓴이-쿤데라가 소설에 가끔 개입해서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이게 이야기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첫 ‘부’의 제목도 재미있다.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들의 짧은 시작이 보여진다. 소설은 ‘부’와 ‘장’으로 구성되는데, 일곱 개의 ‘부’ 안에 여러 장이 들어있는 식이다. 그리고 그 ‘부’와 ‘장’은 그안에 펼쳐질 내용들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직설적으로 담겨있다.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의도일까? 상황은 상황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것일까?

첫 부의 첫 장은 이렇다.

/알랭은
배꼽에 대해
곰곰 생각한다/

6월의 어느 날, 아침 해가 구름에서 나오고 있었고, 알랭은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는 중이었다. 아가씨들을 자세히 보니 아주 짧은 티셔츠 차림에 바지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서 배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거기서 완전히 홀려버렸다. 홀려 버린 데다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아가씨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이제는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도 아닌, 몸 한가운데의 둥글고 작은 구멍에 총집중돼 있단 말인가 싶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자가 (또는 어떤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허벅지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허벅지의 길이는 에로스의 성취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긴 여정 (허벅지가 길어야 하는 게 바로 그레서다.)의 은유적 이미지다. 실제로 성교 중에도 기다란 허벅지는 여자에게 낭만적인 마법을 일으켜 그 여자를 다가가지 못할 존재로 만들지 않는가 하고 알랭은 생각했다.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중심을 엉덩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난폭함, 쾌활함, 표적을 향한 최단거리의 길, 두 짝인 만큼 더 흥분시키는 표적.
만약 남자가 (또는 한 시대가) 여성의 매력의 주임을 가슴에 둔다면 이러한 성적 성향의 특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정의할 것인가? 그는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 냈다. 여자의 신성화,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정녀 마리아, 여성의 고귀한 사명 앞에 무릎 꿇은 남성.
하지만 몸 한가운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남자 (또는 한 시대)의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p. 9~10

‘장’의 제목만으로도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도 있다.

/온 데
울려 퍼지는,
탁자에
주먹 내리치는 소리/
이 제목은 특히나 독특해서, 웃게 되었다. 제목을 이렇게 짓다니!

/몹시 언짢은
기분으로 라몽이
칵테일파티에 도착한다/

/라몽은
알랭과
배꼽의 시대에 대해
논한다/

이렇게 소설들은 하나의 상황에 대한 ‘장’과 두세페이지 내외의 이야기를 가진 짧은 호흡으로 진행된다. 구성이 참 재미있고 계속계속 읽고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쿤데라의 개입도 재미있다.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면서 알랭이 아가시들을 자세히 보니 아주 짧은 티셔츠 차림에 바지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서 배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아가씨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이제는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도 아닌, 몸 한 가운데의 둥글고 작은 구멍에 총집중돼 있단 말인가.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고? 이 소설 첫머리에 쓴 것과 똑같은 단어들로 이번 장을 시작하고 있다고? 나도 안다. 알랭이 배꼽의 수수께끼에 열중해 있다는 말을 이미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러분도 몇 년까지는 아니어도 몇 달 동안 같은 문제들(알랭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 문제보다 분명 훨씬 더 별 볼일 없는 문제들)에 골몰하기도 하듯이, 이 수수께끼가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감추고 싶지 않다. p.47

여러가지 의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다시 읽으며 떠올려 보기로-

  • Published: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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