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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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소설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로 늘 이런 대답을 한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라고.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아마미의 검정 토끼 관찰을 통해 볼링공을 묘사하는 경우라도. 그렇다면 판단은 왜 조금만 내릴까?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폭력적이라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건네주는 데 있다.

….

얼마 전에 이메일로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으니 대략적인 내용만 쓴다.

며칠 전에 취직 시험을 봤는데, 그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원고지 4매로 저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무라카미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로 작가는 그런 글도 술술 쓰시나요?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무라카미하루키 잡문집. p.19~23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쓸 때는 가나가와 현 후지사와 시의 구게누마라는 곳에 살았다. 이사와 이사 사이에 부지런히 완성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내 장편소설은 대체로 이사와 이사 사이에 부지런히 완성되었는데, 그때는 유난히 그 사이가 짧아서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의 출판과 관련하여 출판사와 이런저런 매끄럽지 못한 일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왠지 차분하지 않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아주 넓고 볕도 잘 드는 셋집이라 우리 고양이들은 좋아했다.
책이 나오고 얼마 후 이 소설이 다니자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려준 사람은 주오코론샤의 내 담당 편집자였다. “그렇긴 한데, 당신이 다니자키상을 받을 가망은 일단 없으니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나는 심사위원(의 일부)이 싫어해서 – 내지는 좋아한다고 보긴 어려워서 – 아무래도 수상은 힘들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쪽 사정에는 매우 어두웠기 때문에 ‘흐음, 그렇구나’ 하고, 그의 말대로 상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수상작 발표날 저녁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고 할까 완ㄴ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슨 볼일로 집사람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밖에 나가 적당히 저녁을 해결하고 맥주를 마시고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놀고 있었다. 놀았다고 해봐야 후지사와 역 근처라 별 대단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전화벨이 울렸고, “축하합니다. 다니자키 상을 수상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난데없이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에 실감이 안 났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쨌거나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라는 말까지 들으니 정말로 잊고 있었다.
다니자키상 수상으로 얻은 것은 물론 여러 가지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지고 존경받는 작가이므로, 외국에 나갔을 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받았으니 뭐 그런대로 괜찮은 작가겠지’ 하고 봐주기도 했다. 문학상이란 결국 사람이 뽑는 것이므로 되도록이면 ‘까맣게 잊어버려도 괜찮아’라는 자세를 유지하고 싶지만, 가끔은 인연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p.67-68

 

파이니스트글렌 굴드는 진정한 음악이란 관념으로서 악보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단은 편의적으로 소리로 변환시키긴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듣지 않더라도 음악으로서의 관념이 악보에서 전해지면 그걸로 좋은 거라고. 음악이란 분명 일종의 순수관념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긴 합니다. 다만 보통 사람은 그 관념을 관념 그대로 포착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포켓라디오에서 감동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좋은 소리가 관념을 포착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p. 112~113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p.115

 

책을 읽다보면, 어느 한 구절이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열여덟 살 때 트루먼 카포티의 <최후의 문을 닫아라>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마지막 한 구절이 머릿속 깊이 박혀버렸다. 이런 문장이다.
“그리고 그는 베개에 머리를 깊이 파묻고 두 손으로 귀를 감싸쥐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바람을 생각하자, 라고.”
“think of nothing things, think of wind”라는 마지막 문장이 나는 너무나 좋았다. 일본어로 그 여운을 정확히 번역하기는 매우 어렵다. 트루먼 카포티의 미문 대부분이 그렇듯,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여운 속에서만 살아나는 마음 본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뭔가 고통스럽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그 구절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바람을 생각하자’라고. 그래서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닫고 바람만 생각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부는 바람. 다양한 온도, 다양한 냄새가 깃든 바람. 그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조그만 섬에 살았던 적이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섬이었는데, 훌쩍 그곳으로 떠나 집 한 칸을 빌려 살았다. 그때까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섬이었다. 물론 우리 두 사람(나와 아내라는 뜻인데) 말고는 일본인도 없었다. 서툰 그리스어로 간신히 현실적인 용무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일만 했다. 계절은 가을이었다. 일하는 짬짬이 자주 산책을 나갔다. 지금 돌이켜봐도 신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매일같이 바람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기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바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대개는 미풍이었지만 이따금 거세게 불기도 했다. 대게는 마른바람이었지만 이따금 물기를 머금었고, 아주 드물게 비를 몰아올 때도 있었다. 여하튼 바람은 늘 거기에 있었고, 우리는 바람과 함께 눈을 뜨고 바람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바람과 함께 잠들었다.
어디를 가든 바람은 우리를 쫒아왔다. 항구의 찻집에서는 파라솔 자락을 조급하게 팔락거렸다. 인기척 없는 요트용 선착장에서는 돛대가 쉴 새 없이 달각달각 메마른 소리를 울려댔다. 숲속으로 들어가서는 초록 잎을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어느 먼 바닷가로 실어날랐고, 책상 앞 창가에 핀 부겐빌레아를 나긋나긋 춤추게 했다. 그것은 거리를 지나는 행상의 목소리를 전해주었고, 어느 집에서 굽는 양고기 냄새를 불균등하게 실어왓다.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잊을 새가 없었다.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그 섬에 살 때만큼 바람의 존재를 피부 깊숙이 느껴본 적은 없다. 우리는 마치 셋이서 살며시 어깨를 기대고 그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두 사람, 그리고 바람. 왜 그랬을까? 원래부터 그런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바람이 하나의 영혼을 가지는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바람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조용하고 작은 섬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도 바람을 깊이 생각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바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네 인생 중에 아주 짧은 한 시기뿐일 것이다. 왠지 그런 것 같다.
p.395~398

 

  • Published: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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