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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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라곰

해질녘.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편을 들고, 골목의 주택으로 들어간다. 반짝이는 방, 작은 테이블, 의자와 이름표. 열심히 일하는 에어컨과 선풍기. 각자가 들고온 맥주와 소소한 음식들로 가득한 테이블. 어색하지만, 대화로 금세 친해지는 사람들. 수시로 바뀌는 이야기의 주제, 의견, 토론, 가벼운 농담들.

 

같은 동네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듯 한명씩 가벼운 인사와 함께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늦은 새벽까지 이야기 꽃 풍경을 만든다. 깜깜한 밤 달빛 아래 반딧불이들의 풍경같기도 하다.

 

어느 날, 영화를 보고 난 후. 잠시 밖에 나간 사이, 누군가들은 맘마미아2를 보러간다며 그 음악을 듣고있더라. 부르고도 있더라.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보니, 춤도 추고 있더라. 이런 사람들.

  • Published: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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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제의 일. 어제는 친구와 영화를 보고, 와인을 마셨다. 영화는 나의 추천으로, ‘어느 가족’. 영화관은 친구의 추천으로, ‘필름포럼’이라는 작은 영화관을 갔다. 아담한 영화관에서 적당한 사람들이 모여앉아 작은 스크린을 보며 ‘어느 가족’을 보았다. 피로 엮이지 않은 어느 가족, 행복한 결말을 예상했지만 그리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밤에 옹기종기 마루에 모여앉아 불꽃놀이를 보는 장면. 불꽃놀이는 보여주지 않고 하늘에서 그 가족은 담은 풍경은 정말 멋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합정의 ‘파리 살롱’이라는 와인가게에 갔다. 주택가에 있는 작고 이쁜 가게. 영화관도 와인가게도, 평소 내가 접하던 것들과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 나도 참 모르고 살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파리 살롱’은 언젠가 또 다시 가리라.

오늘의 일. 오늘은 일이 별로 없었다. 낮에 일어나 부모님 집에가서 밥을 먹고 돌아와 저녁부터 밤까지 집에서 이것저것 한 일. 미스터선샤인을 보며, 얼마전 꽃꽂이 수업에서 만든 꽃병의 꽃들을 빼내어 정리한다음 묶음으로 만들어 벽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마음의 짐처럼 계속 나를 따라다니던 짐 중의 하나, 오토바이 프라모델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꺼내어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조립이라기보다는, 일단 오늘은 색을 칠했다. 내일부터 조금씩 해야지.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나는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해야 살아나는 것 같다. 최근에 가장 많이 쓰는 툴은 엑셀과 워크플로위고, 가장 많이 만드는 것은 숫자로된 결과와 목록화 된 문장들인데, 그것보다는 손을 사용해서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을 만드는게 역시 나에게는 맞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막혀있던 생각이 굴러가는 통로들이 조금씩 열리는 느낌이다.

계절이 바뀌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 Published: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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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풍경

치마를 나풀거리며 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앞을 지나간다.
페달에 힘을 주어 힘겹게.
손목도 힘이 부친지, 갸우뚱거리며 일자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헤쳐간다.
잔잔한 풍경 속에서 힘을 주어 헤쳐간다.

귓가에는 아까부터 Lover, please stay가 들려온다.

  • Published: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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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루아 밀크

요즘엔 퇴근하고 집에와서 밥을 먹고 씻으면 너무 졸리고 피곤하다. 씻고 밥을 먹으면 더 졸려서 일단 먹고 씻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졸리긴 마찬가지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나에게는 조용하고 멍했던 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활기찬 저녁과 같다는걸 느낀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마저도 못한다. 그런데 오늘 잠이 오지 않는 방법을 발견했다. 밥을 먹고 씻고 깔루아 밀크를 한잔 하면 잠이 싹 가신다. 그래서 오늘은 밥먹을 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깔루아 밀크를 홀짝거리며 영화를 보다가, 새로 프린트한 물건에 가죽을 대고 바느질을 하며 영화를 다 보았다.

그런데 또 생각이 나서, 깔루아 밀크를 한잔 더 만들어서 홀짝홀짝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Nothing But Thieves의 Nothing But Thieves의 앨범을 계속 듣는다. 새로 이사한 집, 맥에 연결된 스피커와 Apple Home으로 연동되어있는 스피커 두 대가 0.2초 정도의 delay를 가지고 서로 노래를 부른다. 기술의 부족함이겠지만, 꼭 콘서트장에서 듣는 느낌이다. 깔루아 밀크를 홀짝홀짝 마시며, 오랜만에 말짱한 밤을 보낸다.

  • Published: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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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

조용한 해변가 마을, 창가에서 주황 불빛이 새어나오는 네모네모난 이층 집. 홀로 찾아온 여행객들이 하나 둘 모인다.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태어나 처음 만나 한 식탁에 모여앉는다. 시작은 도란도란 함께 마실 맥주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게임. 아, 조금 늦은 여행객이 도착했다. 내가 주인인 것 마냥 문을 열어준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다녀온 여행지를 이야기하고, 내일 아침 갈 곳을 이야기하고, 버스를 탈 곳을 이야기한다.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 법무팀에 있는 사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임상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 몇 안되는데 참 다양한 사람들. 서로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가는 밤.

깊어가는 밤. 갑자기 다들 트럭에 몸을 싣고 깜깜한 마을 골목을 지나 외곽으로 향한다. 음악을 크게 켜고 몸은 트럭의 움직임에 맞춰 기우뚱 기우뚱. 입구를 막아 놓은 의자를 잠시 옆으로 옮기고, 다시 트럭을 타고 오름의 꼭대기에 오른다.

깜깜한 밤. 깜깜한 오름 꼭대기에서 깜깜해진 마을과 바다를 본다. 수평선 근처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다들 오랜만에 작은 일탈.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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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집에와서 씻고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3시간만에 깼다.
오랜만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도심 속 높은 건물의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옥탑방. 밖이 훤히 보이는 옥탑방이었고,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해야지 하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페어링 하는데 계속 페어링에 실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게 내 집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며 잠이 깼다. 음악 감상도, 외계인 침공도, 친구들의 방문도.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고 잠이 깨버렸다.

  • Published: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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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공원에서의 휴식시간

출근을 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고, 곧바로 컵을 들고 커피믹스를 넣고 물을 따른다. 그리고 옥상공원으로 향한다.

나무벽 위에 컵을 내려놓고 담배불을 붙인다. 언뜻 생각하면 쓸데없는 조형미로 나무판재를 사용해 공간을 구성한 듯 싶지만, 몇 미터로 길고 폭이 30센티미터 정도이고 높이는 120센티미터 남짓한 이 나무벽은 어포던스의 극치다. 팔꿈치를 대고 기대어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고, 풀쩍 뛰어올라 앉아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컵을 내려놓기에도 딱이다. 답답하면 그 위에 서서 더 넓은 풍경을 볼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우며 풍경을 보면, 저 멀리 아침 햇빛이 반사되어 주황빛 유리궁전처럼 반짝반짝거리는 건물들이 보인다.
담배를 피우며 풍경을 보면,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같은 구름들이 보인다.
담배를 피우며 풍경을 보면, 눈발로 가득한 건물 숲이 보인다.
담배를 피우며 풍경을 보면,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처럼 몽환적인 노을이 보인다.

가끔, 누군가 같이 올라오거나 담배를 펴다가 만나면, 벤치에 기대어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세상에서는 어떤 빛을 좇아 이렇게 다들 힘들게 살까. 매일 멋진 풍경을 보고 하루 먹고 살 수 있다면, 지금처럼 먼 곳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지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옛날에도 하루하루 바삐 살았다더라, 그리고 그 때도 여유시간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 시간을 어찌할 바 몰랐다더라… 따위의 이야기 말이다.

  • Published: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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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이야기

이것 조차 옛날 이야기이지만, 친구에게 옛날에 내가 보냈던 편지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생소했다.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나의 생각과 글이, 누군가는 기억하고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 신기하다.

하지만 특별히 군대에 있을 때에는 가끔 편지지에 글을 쓰기 전, 노트에 먼저 편지를 썼었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누군가에게 썼던 편지의 내용’이 약간 남아있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이메일의 시대로 넘어오며, 내가 보낸 편지는 이제 나의 편지함에도 남게 되었다. 보내고 난 뒤에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않으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답장을 받게 되면 바로 아래 나의 편지가 보인다.

이제 나의 이메일함은 일간신문함이나 고지서통지함 비슷하게 바뀌어버렸는데, 오랜만에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메일들(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을 보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구나, 예전엔 왜 그랬지, 예전엔 이랬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지, 왜 이런 생각을 안하고 살지.

예전의 편지보다는 밋밋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 쓴 이야기와 답장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점은 이메일이 좋다. 그 때의 나, 그 이전의 나, 모두 다른 내가 누군가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춰보면 재미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생각과 감정의 사진 같다.

물론 그런 사진 한 장이 생기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 Published: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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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늦은 밤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이 곳에서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그 동안 관심을 많이 가져주지 못한 것이, 혼자 있는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떠나오기 며칠 전이라도 생각을 해둘 걸 그랬다. 떠나는 날 아침에 겨우 생각해낸 어설픈 방법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의 물을 가득 흐르게 하고, 잎과 가지를 흠뻑 적셔주는 것으로 잘 지내주었는데, 이제 2주 반이 지났다. 옆에 있지 않아 모습과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그래도 잘 큰 녀석이니까 잘 버티고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햇볕이 잘 들도록 간유리는 열어두고 왔는데 밤 공기가 조금 차가우려나. 몇 주째 냉장고 소리 밖에 들리지 않을 집에서 심심하려나.

언제나 동일한 관심으로 대해 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하지만 그게 맞는 것인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석은 왜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인지, 한탄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봄처럼 가을처럼 풍족하고 행복한 때가 있기도 하고, 가뭄이나 장마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힘든 때도 있다. 그게 생각보다 길 때도 있고. 그렇다고 마냥 버텨달라고 하면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혹시나 벌써 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미안.

  • Published: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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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아침

한 겨울의 아침, 창가의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공기 속에 잠이 깬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꽁꽁 덮는다. 밝은 햇살 속에서 눈을 감고 겨울 아침 기운을 생각한다. 오늘은 방청소를 할까, 생각을 한다.

  • Published: 1 year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