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감성적인 디자이너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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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아침

한 겨울의 아침, 창가의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공기 속에 잠이 깬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꽁꽁 덮는다. 밝은 햇살 속에서 눈을 감고 겨울 아침 기운을 생각한다. 오늘은 방청소를 할까, 생각을 한다.

  • Published: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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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오랜만에 이틀 동안 아무런 일 없이 보냈다. 밤, 학교를 보고싶어 왔다. 벌써 계절이 바뀐건지 시원한 바람. 평소에는 긍정적인 감정이나 복잡한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학교에 오면 그런 감정들이 살아난다.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감정, 감각들이 있다는 것이 떠올려진다. 6년을 집보다 더 집처럼 지낸 커다란 공간. 다락방의 상자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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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반딧불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고
끝도없이 이어지는 밤의 사이를
반짝이는 빛을 따라 거닐었었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반딧불 반딧불
쏟아지면 사라지리 애처로운 반딧불
여름밤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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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기억속에 몸을 기대면
어느새 밤하늘 가득히 별이 내리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우리들 우리들
쏟아지면 사라지리 아름다운 시간들
여름밤 반딧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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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니 향기가 사랑스런 모습이
다시떠올라
잊었다고 생각한 그 밤에 거리가
마치 마법처럼 피어오르고

떠다니는 별과같은 우리들 우리들
쏟아지면 사라지리 아름다운 시간들
여름밤 반딧불처럼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 Published: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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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의 공연

작은 무대가 있는 어두운 카페. 무대 가까이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공연을 기다린다. 작은 촛불과 까만 고양이, 나무의자. 마치 커다란 인형극 장소처럼 생긴 무대에 드럼과 키보드, 기타받침과 마이크와 선들이 얽혀있다. 첫 밴드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이 밴드는 지하철 이야기와 네이트온의 추억을 노래한다. 오래전의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듯이. 두 번째 밴드는 아주 깊은 밤을 노래한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노랫소리가 인형극 무대에 잘 어울린다. 까만 고양이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걸어다니며 공간을 한껏 즐긴다.

  • Published: 4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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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풍경을 자주 보았다.

스물 다섯 이후로는 풍경이 나의 마음을 채웠다. 매일 나무들의 숲이나 강을 보면서 지냈고, 그 풍경 속을 거닐었다. 음악을 듣고, 담배를 태웠다.

이제는 고등학교때 느꼈던 감정과, 15년 전, 10년 전, 5,6년 전 느꼈던 감정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감정을 대하는 스펙트럼이 줄어든 것일까, 혹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늘어나서 예전의 감정들이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실, 풍경은 어릴 때 가장 많이 보았다. 풍경 속에 살았다. 저수지 둑에서 놀이를 하고, 아카시아나무 길에서 꽃을 따먹고, 딱딱한 나무껍질을 만지며 사슴벌레와 놀았다.

군대에서도, 숲 속에서 살았다. 봄에는 봄꽃을 보고, 여름엔 비오는 숲속을 거닐고, 가을엔 후임을 데리고 단풍길 산책을 다니고, 겨울엔 아침에 새하얀 눈밭을 밟았다.

강이 보이는 풍경. 가끔 함께 풍경을 보고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이 생각난다는 말은, 참 좋다.

  • Published: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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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공휴일

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메일을 쓰고,
식탁에서 코딩을 하고 한켠에서는 양주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탁구대가 있는 방에선 핑퐁핑퐁 탁구를 치고,
커다란 티비가 있는 거실에서는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오전에 밖에 구경을 나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들고 들어오고.

인도의 공휴일. 인도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풍경.

  • Published: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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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in the air

영화 Up in the air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보고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늘 내용과는 비껴간 생각을 하게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무, 나무의 나이테가 생각났다. 일종의 번뜩이는 깨달음이랄까.
나무는 매 년, 정확히는 사계절을 거칠 때마다 나이테가 생긴다. 사람은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사람이 말하는 나이라는 것이 그것과 같은 거겠지. 사람도 각자의 마음에, 혹은 정신에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는 것 같다. 나무가 그렇듯. 그렇더라도 겉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하는 것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더 크게 자라나고 가지를 뻗고 잎들을 키워가고 뿌리를 뻗어나가고.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가고, 그렇게 스스로 가꿔간 자신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소용없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므로 억울해 해봐야 결국 도돌이표다.

십대는 걱정 없이 활기차게 그 안의 세상을 즐기고 배우는데 가장 좋았고, 이십대는 새롭게 펼쳐진 세상을 마음껏 누비고 일탈을 하기에 가장 좋았고, 삼십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그 삶을 즐기고 힘들어하고 깨닫고 그런 일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깨우쳐가는데 좋다. 나만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이긴 하다. 그 삼십대의 가운데에서는, 거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내가 요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사십대에 다시 되돌아보면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는 것을.

영화에서는 17년을 일한. 25년을 일한 직원이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17년이라. 나는 한 직장에서 그렇게 일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은 폭풍 속에서는 불가능 할 것만 같다. 언젠가는 폭풍이 그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폭풍속을 계속 헤쳐가야 한다면 내가 성장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럼 나는 그 폭풍을 즐기고,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회사의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함께 겪는 1년차의 후임, 나는 그 나이 때 눈이 오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가을에는 공부 안하고 학교를 산책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장마 때는 우산을 쓰고 빗물 고인 웅덩이를 차박차박 걸어다녔다. 과연 나는 이 성장과 고통의 시기를 이겨낼 정도의 나이테를 쌓았나?

라고 생각을 해보는 밤이다.

  • Published: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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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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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어두운 지하실의 조명을 모두 끄고 플라네타리움을 켠다. 지이이잉 모터가 빠르게 돌고 드르르 기어가 천천히 도는 소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은하수와 별빛이 가득. 가만히 몇번이나 회전하는 별빛의 풍경을 본다. 어둠, 지이잉 드르르 소리만, 계속 저기 어둠 속에 맺히는 빛의 점들을 본다.
옛날.

  • Published: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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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을 지나며

정읍.

내륙을 가로질러 정읍을 지난다.
정읍은 가을의 내장산이 멋있다던데, 가을엔 들러본 적이 없다.

한 5,6년 쯤 전, 사물놀이 선생님의 코란도를 빌려서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났었다. 정읍엔 우연히 알바로 일을 도와드렸던 학교 선생님이 계셨는데, 삽겹살도 사주시고 숙소도 구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여기저기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다. 아무튼, 정읍의 기억은 이것.

  • Published: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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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

미술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모두에게 자동차를 그리라고 했다. 다들 자동차를 그렸고, 그 그림들을 벽에 모두 붙였다. 그런 다음, 선생님께서 자동차는 굴러갈 수 있게 그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백지에 자동차를 그리며 시범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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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고, 잠깐동안 미술 강사를 했다.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한 학생이 녹슨 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제일 가까이 보이는 부분의 디테일을 파스텔로 슥슥 그려주었다(생각해보니 그땐 그런 사물들의 모습이 잘도 떠올랐다). 그러고 난 뒤 한바퀴를 돌고 오니, 그 학생은 사물의 모든 부분을 내가 그렸던 디테일처럼 표현했다. 아, 그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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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준비 시간, 선생님이 연구작을 그리기 전에 연습삼아 백지에 수채물감으로 개구리의 눈을 그리고 계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그 그림을 주셨다. 이렇게 그려보는 연습을 하라고. 몇 번 그려보고 나서 포기를 했다. 나중에 집에 가져가서 책상 유리 아래 넣어두었다.

  • Published: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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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실을 떠나보내며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밴드 합주실이 떠올라서 잠이 오질 않는다.

밴드 합주실의 이름은 DSS이다.
Dog Sound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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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합주가 끝나고 약속이 있어서 필요한 짐만 차에 싣고 떠나왔다. 사실 지난 일요일 합주를 마지막로 DSS를 떠났다. 월세로 빌려서 쓰던 합주실 생활을 끝내고, 떠돌이 밴드를 하기로 멤버들과 결정했다. 그리고 합주실은 모두 철거해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나오기로 했다. 아마 철거할거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잠도 달아난 것이리라(혹은 비가 와서거나).

사람과의 관계가 ‘이제 안녕’, 하고 평생 끝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다시 만날 일 없어보이는 외국 친구도 희미하게 소식을 주고받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떠나와도 학교는 그 자리에 남아있으니까.

DSS의 철거는 ‘이제 안녕’ 이다. 어느 차가웁던 겨울 날 작은 방에 모여 부르던 그 노래는, 이제는 기억속에 묻혀진 작은 노래됐지만 우리들 마음엔 영원히.

태어나 처음으로 가지게 된
우리들만의 아지트였고,
나만의 아지트였다.

마음대로 뜯어고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마음껏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스피커가 화가 난 듯 소리를 크게 틀어도 상관없었고, 동네에 버려진 가구들을 하나 둘 주워와서 공간을 꾸며도 다들 말리지는 않았다. 포기는 했겠지만.

바보같이 혼자 울기도 하고, 쾅쾅거리는 음악을 들으며 화를 내기도 하고, 술을 홀짝 마시기도 하고, 불을 다 끄고 별빛 가득한 플라네타리움만 켜고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가끔 줄담배를 펴기도 했다(이제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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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부터, 6년동안 일요일에는 DSS에 갔고 153밴드 합주를 했다. 적당한 시기에 밴드 생활을 시작해서 즐거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기타는 아직도 못친다. 그래도 DSS의 엉성한 풍경이 나의 엉성함을 묻히게 해주었다. 이제 반짝반짝한 합주실을 대여해서 합주를 하면 나의 엉성함이 돋보이겠지.

DSS가 있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 외의 즐거운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여행도 갈 수 있었고, 공연도 할 수 있었고, 동네친구들과 파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제대로 짜여진 합주보다는 놀면서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DSS가 좋았다. 물론 합주를 하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편한 공간이었다.

열흘 전만 해도 합주실을 빼기 전에 친구들을 불러서 마지막 파티를 하자고 이야기했었는데,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서 생각할 겨를 없이 끝이 나고 말았다. DSS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 풍경을 하나하나 마지막으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기억할 조각이라도 하나 들고 올 생각을 못했다.

멍하니 생각나는대로, 인터넷의 작은 구석에 DSS를 기리기 위한 글을 남긴다.
바이바이, DSS.

  • Published: 1 year ago